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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12. 12世 〉4. <요재공>성헌공휘식유사(省軒公諱軾遺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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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요재공>이지당기밀평박인근지(二止堂記密平朴寅謹識)
<요재공후>이지당기밀평박인근지(二止堂記密平朴寅謹識) 遵峨嵋臨楊川望見他聖績峯兀然無峻嚴而鄉人尚稱其洞壑曰高山盖由域内有省軒幽宅後代仰慕之特高也省軒吾郡趙公諱軾之號寔於翰林學士毛老亭為曾孫而世以詩禮相襲不幸值龍蛇之難仗義赴錦山韜略並備奇正相因持籌運盡勤輒如神導是以高齊峯至有賢乎子房之獎語使其貞忠大節風乎百世之後然借際熙明入乎廊廟展布其經倫則風化聲績豈特著是而北哉然則士之屈伸媳摠關乎時世而公之遇時世可謂其不幸然較諸那日滄桑則亦一大幸也吁彼隧道之南平岩互列嘉木盛庇祔有小潤玦玦然破玉佩余炅春秋暇隙每與遠方友賓多감憩慰于此誇得吾郡·出文武之材曾焉如斯而使九原可作當挾其藍興為誦高出仰止景行行止之詩者崇失公之嗣孫奉燦有文有行克修先休者也間與諸族協議荀完齋舍於此岩之傍以二止名其堂盖不謀而同符也寅於緇縮衣宿誠難容辭其請為叙其實事而復之曰凡今之清左教穿異袖而有過乎此山者例皆為省軒公罪人况為其雲仍齊戒陟降之際得無愓然一念者战仰北當以峻嚴行止必以平直警不入於鳥獸蹄跡之間則此日此舍之建焉能有事乎神明之交而己吾知聖績峯蒼翠之氣能作瑞雲於南方云 二지당기(二止堂記)밀평박인근지(密平朴寅謹識) 아미(城嵋)를 쫓아 양천(楊川)에 이르러 저 성적봉(聖績峰)을 바라보면 홀로 우뚝 솟아 높이고 무서운 것은 없으나 고을사람이 오히려 그 동학을 일컬어 말하되 고산(高山)이라 하니 대개 그 지경안에 성헌(省軒) 유택(幽宅)이 있어 훈인이 특별히 높이 우러러 생각한 때문이었다. 성헌은 우리군 조공 휘 식(軾)의 호요 한림학사모로정(翰林學士毛老亭) 증손으로 대대로 시예(時禮)로써 이어받다가 불행히 룡사의(壬辰癸巳)을 만나 의분(義憤)을 품고 금산(錦山)에 이르러 도량이 겸비하고 기문둔갑(奇門遁甲)이 서로 이어 이리저리 꾀를 내고 움직이면 귀신이 인도한 것 같으니 이로써 고제봉(高齊峰)이 자방(子房張良)같이 어질다고 크게 허락한 말이 있어 그 곧은 충성과 큰 절의로 하여금 百세 뒤에 풍교(風敎)가 될것이나 밝은 성대를 만나 조정에 들어가서 그 포부를 편즉 풍화성적(風化聲績)이 어찌 특히 이와 같이 그칠것인가. 그런즉 선비의 출세가 다세대에 관계가 있고 공의 세대만낸 것은 가히 불행하다 이르겠으나 그러나 그 위가 서로 벌렸고 아름다운 나무가 성하게 덮였으며 구부리면 적은 간수가 있어 패옥 (佩玉)소리같이 물소리가 은은(殷殷)하니 내가 봄가을 틈있는 때에 매양 원방가빈(遠方佳賓)으로 더불어 많이 이에서 쉬며 우리군에 문무지재(文武之材)가 많이 난 것을 자랑함이 일찍 이와 같았는고 하여금 황천에 가서 일하면 마땅히 그 남여(藍輿)를 끼고 높이 우러러 부러워하며 고명한 덕행을 우러러 따른다는 시경을 여러 번 외웠을 것이다. 사손봉찬(嗣孫奉燦)이 문행(文行)이 있어 능히 선세의 아름다움을 닦은자라 제족으로부터 협의하여 이 바위절에다 제각을 이룩하고 二지(二止)로 그 집을 이름한 것은 대개의논 아니하고 무언중 뜻이 합치된 것이다. 인(寅)이 평복으로 깊은 정성이 있어 그 청을 사절하기 어려움으로 그 사실을 기록하여 보내되 무릇 이제 패리(悖理)의 교파(敎派) 가 급히 번져 오랑케 옷을 입고 이 산을 지낸 자는 다성헌(省軒)공 죄인이 될 것이니 하물며 그 후손된 자 재계하고 오르내릴 즈음에 어찌 슬픈 一념이 없을 것인가 마땅히 준엄(峻嚴)하게 우러러 부러워하고 반드시 평직(平直)하게 써 우러러 따라 새짐승의 굽이나 자취 사이에 들지 않을것을 맹서한즉 오늘날 이 재각이 이에 능히 신명(神明)의 왕래에 일이 있을뿐이다. 내가 알건데 성적봉(聖績峰) 푸른 기운이 능히 남방에 서운(瑞雲)을 일으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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